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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코의 궁금한 부분을 상세히 답변드리겠습니다.
저의 정체성에 대해 알고싶어요.
  • 작성자 듀길
  • 작성일 2008.05.23
  • 문의구분 해충관련 문의

혜진이가 바퀴벌레를 발견한건 내가 컴퓨터를 막 껐을때쯤 이었던거 같다. 혜진이는 부엌에 있었고 남희는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있었다. 사실 내 방에 있을땐 에이 그깟바퀴벌레.. 대충 때리면되지, 했지만 직접 나가서 보니 역시 생각보다 카리스마있었다. 며칠전 남희한테 몇번인가 들키고 도망다닌 그 녀석같았다.



어디있는데?



저기있잖아 숙여봐라



혜진이는 허리를 숙여서 바퀴벌레를 보고는 혼자 비명지른다.



어디..? 아.. 젠장 ..



그릇진열대및 조리대위를 비틀비틀 걸어가는 그 바퀴벌레는 대략 길이가 3.5cm 정도... 머리부터 끝까지 완전히 새카맣다. 진짜 완전히 까맣다. 게다가 어디서 관리라도 받았는지 반질반질 윤기까지.. -_-; 전부터 성충 나방과 바퀴벌레를 볼때마다 떠오르는 거지만 한걸음 한걸음 옮길때마다 그 터프한 징그러움에 오한이 밀려온다. 사실 예전엔 이렇지 않았는데 20살먹고 어느날되니까 바퀴벌레가 점점더 무섭더라.



이런 생각에 빠져있는데 혜진이나 내 눈앞에서 중국집에서 걸어놓고간 찌라시를 흔든다.



이걸로 죽여라.



뭐 그걸로? 제정신인가, 저건 책도 아니고 파리채도 아니고 그냥 찌라시일뿐이잖아. 물론 마분지비슷한 종이로 만들어서 다른 찌라시보단 튼튼하긴 하겠지만 인류보다 한단계 앞서 진화해오는 저 바퀴벌레님을 그런 찌라시로 심판하겠다니, 말이 되나? 내가 아는 누군가는 바퀴벌레를 찬양하기까지했는데..(누구게) 태어나 25년동안 살면서 그런 찌라시로는 바퀴벌레를 골로 모시는건 불가능한것도 몰랐단 말인가? 마치 파리약으로 프레데터를 때려잡는 격이로군..



야 미쳤냐 이런걸로 잡으란 말이가? 책없냐? 책..



아 빨리 잡아라 엉엉 으악 으어헝항



너무 잔인하군, 나에게 저런걸로 바퀴벌레를 잡으라고 시키다니, 바퀴벌레는 죽어서도 병원균을 살포한다는데(미국의 일부바퀴에 해당) 사실 내 속마음도 읽는거 아닐까? 내가 만약 이 찌라시를 들고 어설프게 저 바퀴에게 다가갔다가 갑자기 날아들어 내게 곤충같이(?) 대응하면 어떻하지? 내가 어색하게 휘두르는 모든 심판의 찌라시를 10cm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채 모두 피한다면? 그럼 어떻하지? 무릎꿇고 바퀴벌레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나? 십자가를 가져올까? 성경책은? 성경책으로 강도를 때려잡은 할머니도 있다던데 성경책으로 어떻게 되지않을까? 그렇다면 난 바퀴를 잡은 성경책을 들고 교회에 다녀야하는건가? 바퀴벌레의 염원과 원한이 그대로 묻어있을텐데.. 젠장.. 난 성경책이 하나밖에 없단 말이야. 그건 엄마가 사준건데.. 2: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가져온건데.. (오빠와 나의 경쟁)



난 그 자리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일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이렇게 바퀴벌레보다 못한 두 인류가 실갱이를 벌일때 문이 쾅 하고 열리면서 우리의 호프, 우리의 전사, 우리의 용사, 남희양께서 나오셨다.



야 진짜.. 어딨노? 어딨노?



샤워하다 나온 그녀는 실오라기 하나도 안걸친 알몸이었다--; 나와서 싱크대로 가더니 혜진이가 떨며 들고있던 짜리시로 바퀴벌레를 정확히 4번 내리쳤다. 단 한방도 빗나가지 않은채 0.1초도 망설이지 않은채 찌라시를 반으로 접고 정확하게 모서리부분을 이용해서 바퀴벌레를 골로 보내시는 것이었다.



알아서 처리해!



그녀는 찌라시를 아무데나 두고 샤워를 마치기 위해 다시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는 용기를 내어서 겨우겨우 싱크대앞에 섰다. 바퀴벌레는 책에 깔린것처럼 아주 납작하진 않았지만 거의 납작하게 난자되어있었다. 혜진이가 옆에서 조른다. 어떻게 좀 해보라고.

나는 방금전의 남희의 모습에서 용기를 얻었다. 침을 꼴깍 삼키고, 식탁위에있던 화장지를 많이 풀었다. 그리고 식물곤충상태가 된 바퀴벌레의 위에 휴지를 올렸다. 혜진이가 옆에서 밖에다 버려라, 밖에다 버리면 안되나? 라고 물어봤지만 미안하게도 난 휴지를 싸서 바퀴벌레를 만질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휴지를 그대로 바퀴위에 살짝 올려놓고 나는 혜진이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혜진이는 바퀴벌레를 슬적 싸서 휴지를 들어올렸다. 그때 잘했어야 했는건데... 지금 생각해봐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걸 그대로 버리지 않고 그녀는 휴지를 들어서 바퀴벌레를 본것이다. 그리고 아마 바퀴벌레와 눈이 마주쳤겠지.

그녀는 싱크대위로 다시 던져버리고는 엄청나게 큰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건물이 떠나갈정도로, 아주 길게- 정말 길게- 사실 난 비명소리엔 별로 놀라지 않는터라 그 순간이 정말 길게 느껴졌다. 거의 울 법한 얼굴을 한 혜진이와 먼 일이냐고 화장실안에서 묻는 남희에게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그러니까 그게



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냥 혜진이가 그냥



꺄아아아아아아아아



아 왜 비명지르는데



움직였단 마링야아아아앙



어느새 나는 다시 3미터정도 멀리 떨어져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전사, 우리의 구원자, 우리의 페인킬러, 남희가 화장실문을 벌컥 열고 다시 나왔다. 그녀는 여전히 알몸이었지만 나에겐 성모마리아나 마더테레사처럼 느껴졌다. 젠장, 시고니 위버는 저렇게 섹시했을까?



아 이런것까지 내가 해줘야겠어?



수건으로 대충 몸만 가린 그녀는 아까의 짜리시를 집어들고 바퀴벌레위에 대더니 휴지로 바퀴벌레를 마구 찍어누르더니 바로 다른 휴지를 꺼내 바퀴를 싸서 휴지통안에 쑤셔넣었고는 다시 화장실로 들어갔다. 이 모든 일은 남희가 화장실에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기까지 약 10초정도 걸렸다.

어제 잠들기전에 누워서 사실은 난 똥싸는 기계가 아닐까? 잠시 생각해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질문입니다.

전 정말 똥싸는 기계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