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번호 : 오얏나무 1328대 509회차 3일-ㅂㅂㅋㅋ
수신인 : 세수코 인질관리 담당자.
바쁘신 와중에 수고가 많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인간들이 우리 바퀴국의 일원임을 빙자해서 글을 올리고, 저희를 희롱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묵묵히 보아왔습니다. 하지만, 종족 전체의 생존과 직결되지 않는 한 간섭하지 않는다는 75번째 다리 29번째 털에 의거하여 저희는 아무런 댓구를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가 우리 바퀴국과 인간종족 사이의 갈등을 고조시키고 결국에는 분쟁으로 가게 될 우려가 있는바, 여타 종족과의 협력 및 바퀴제국의 번창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간섭할 수 있다는 37번째 다리 98번째 털에 의거하여 이렇게 질의/협박/항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족이 바쿠세상에 나타나고서 바퀴왕이 벌써 7592364853485847857834번째가 되었습니다. 저희의 눈 앞에서 온갖 이종 동생물이 나타나고 사라지기가 다섯째 다리에 난 털만큼이나 흔한 일인지라, 저희는 인간종도 역시 그들처럼 조용히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고, 처음부터 “평화로운 공존“ 정책을 펴나갔습니다.
물론 개중에는 인간족의 위험성을 간파하고, 대공룡전 이래 두번째로 대인간전을 펼쳐야 한다는 일부 강경론도 있었지만, 한번에 낳는 알 수만큼이나 자애로운 저희의 5783257285번째 여왕께서는 냅둬라, 다 우리 식량이다. 안키워도 알아서 크고 나중에는 공룡처럼 온갖 먹을 것도 제공해 줄 테니 얼마나 좋으냐’라는 한 마디로 주전론을 일축하시고 평화공존의 길을 택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강경론자들도 그만 공룡 덕에 원없이 맛보았던 그 큰 알의 맛을 떠올리고는 입을 다물었지요. (물론, 이러한 결정에는 인간이 알을 낳는다는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 포유류 연구위원회’의 잘못된 판단도 역할을 했기는 합니다. 그때 수장이었던 공룡바퀴 9827호가 양귀비 중독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다는게 밝혀진 것은 머나먼 훗날의 이야기입니다.) 이후 저희의 대인간정책은 평화공존 및 사육정책이 그 기조로 자리잡았지요.
여튼, 저희는 인간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조용히 살아왔습니다. 언제 바퀴족이 떼를 지어서 인간을 습격했다거나 혹은 인간을 물어 죽였다거나 너 지구에서 따나라~고 선언했다거나 여튼 머 그런 말 본적 있수? 없지요. 저희는 이렇게 평화로운 종족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저희는 공룡족을 이 세상에서 없애서 인간족이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했으니, 인간의 은인이지만, 언제 그런걸 내세우고 그런 적도 없습니다. 물론, 대다수의 인간들은 바퀴의 이러한 은혜를 알아보고서, 온갖 잡동사니 먹을 종류를 먹기 좋게끔 가공해서 바쳐온지라, 강경론이 앞에 나서기 힘들었던 이면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가끔씩 이유없이 종족을 잡아서 태워 죽이기도 하고 저기 머나먼 곳에서는 기름에 튀겨서 먹기도 하고 그랬지만, 원래 완전히 분쟁이 없는 상태’란 없는 법이고, 게다가 온갖 종류의 동식물 및 기타등등을 먹기 좋게끔 알아서 잘 가공해서 매일같이 갖다 바치는 종류가 인간 외에 얼마나 있는가라는 현실적인 논거 덕에 그동안 화해공존 및 양육론의 입장이 득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저희 바퀴나라에서 망명높은 신형 섬바퀴 594호가 실종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알아본 즉, 그는 인간족이 무엄하게 우리 일족을 가둬놓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이를 알아보겠다며 길을 떠났다가 감감무소식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조사차 할일없는 백수바퀴 20마리에 건달바퀴 30마리를 보냈으나 다시금 그들 역시 감감 무소식이 되었고, 그들이 좋은 곳에서 맛난거 먹으며 살고 있다는 풍문이 나돌았습니다. 그 풍문을 듣고 나도 그곳에서 살겠다며 길을 떠났다가 밟혀죽고, 차에 치여 죽고, 굶어 죽은 바퀴가 헤아릴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이에 바퀴나라의 안위를 염려한 여왕의 명으로 알아본 즉, 그동안 말없이 사라졌던 동료 바퀴들은 모두 세수코라는 곳의 모처에서 호의호식하면서 감금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곳에 감금되어 있었던 집바퀴 48239-41호, 42호는 그곳에 있으면 알아서 종류별로 골고루 좋은 것을 주는 천국 같은 곳이지만, 가끔씩 인간의 농간으로 썩었던가 아니면 O157 대장균 내지 광우병 걸린 소로 만든 음식을 주는지라 죽기 싫으면 조심해야 한다는 증언을 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일부 바퀴는 그만 식욕을 잃고 자연사한 동료의 시체만으로 연명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수코측의 조치는 모든 바퀴는 행복을 추구하고 먹고 싶은 것을 맛나게 먹으며 살 권리가 있다’는 바퀴행복추구권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조치입니다. 세수코측은 바퀴는 물만 먹구도 산다느니, 먹은 것을 토해서 배설물을 먹는다느니 하며 바퀴족을 험담하고 있지만, 이는 종족간의 문화적 차이를 간과한 편견입니다. 저희는 인간이 거위간을 꺼내먹던 개를 먹던 결코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실 온갖 것을 다 먹는건 인간이 저희보다 더합니다. 고양이 구데기 굼벵이 지렁이, 심지어 우리 바퀴족까지. (세수코측의 Q&A를 잘 읽어보면 세수코측의 누군가도 점심시간에 저희 바퀴족을 먹고 혹시 바퀴를 임신하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인간의 잡식은 우리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는바 없습니다. 세수코는 또 우리 종족에 대해서 배에 지방과 단백질을 비축하고 있는지라 금방 죽지도 않는다고 하지만, 배에 지방을 비축하는게 어디 우리만의 일입니까? 인간족의 배에 들러붙은 지방에 눌려죽은 바퀴만도 연간 43263마리에 달하는 형편입니다.
여튼, 바퀴에 대한 학대 및 감금이 저희 세상에 알려지면서 저희 세상에서는 주전론이 점점 더 그 세력을 확대해 가고 있습니다. 강경바퀴당 당수인 미국바퀴 부수는 최근 연설을 하면서 세수코는 XX제약, XX제약과 더불어 이 지구상에서 우리를 위협하는 악의 축을 형성하고 있다’면서 국민을 선동하는데, 점점 더 그 지지를 넓혀가는 형편입니다. 일부 독일바퀴계열 강경론자들은 배에 난 털을 다 깎아서 스킨배떼기족을 형성하고 점점 더 분위기를 제2차 투쟁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더구나 최근에는 비행기를 타고 입국을 시도하던 강경바퀴당 국방담당 미국바퀴 롬주페두가 입국을 거부당하면서는 더욱 더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있습니다. 롬주페두는 인간 유순둔의 주머니에 붙어서 들어오려고 하였으나 인간들이 갖은 구실로 입국을 막았다고 하더군요.
강경론자들이 제2차 전쟁론에서 제시하는 방법은 너무도 다양해서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지경입니다. 1000만 마리의 날바퀴가 뭉쳐서 세스코 건물에 자살테러를 해야 한다는 주장 정도는 약과에 불과합니다. 식당마다 바퀴헤딘 전사들을 투입해서 인간족의 밥과 반찬 및 국물에 다리 하나씩을 떨구면 알아서 식욕이 없어진 인간족은 멸종할 것이라거나, 3000만마리의 날바퀴가 협력해서 세수코 직원을 인질로 붙잡자거나...
이에 저는 사태를 가능하면 외교적으로 수습하고자 이렇게 질의 및 외교요청을 드립니다.
먼저 감금하고 있는 저희 바퀴족을 석방하시기 바랍니다. 저희 바퀴족은 자유의사를 존중합니다. 따라서 모두다 강제로 내보내라는 말은 결코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닫혀 있는 문을 활짝 열어서 나가고 싶은 바퀴는 언제든 나갈 수 있게 해주어야만 합니다.
다음으로 그곳에 있는 바쿠들에게 ?은 고기 등의 유해식품을 공급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저희 바퀴족을 이상한 혐오족인 것처럼 선전한 홈페이지의 글을 정정하십시오.
이상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저희도 이제 더 이상 강경론자들을 말릴 수만은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바퀴력 ㅅ572957945년
외교담당 부싱 바퀴.
고려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