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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코의 궁금한 부분을 상세히 답변드리겠습니다.
새로운 역사와 진실,,
  • 작성자 김명경
  • 작성일 2002.12.15
  • 문의구분 해충관련 문의

안녕하세요?

세스코 질문과 전혀 상관 없지만.. 세스코 분들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꼭 아셔야 겠기에, 게시판에도 꼭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어제 광화문에 다녀왔습니다.

뉴스에서 아무리 자세히 말했어도 기자들이 아무리 잘 찍어도 다 못담은 부분이,

그리고 다소 왜곡된 부분이 있기에.. 일기 형식으로 대충 올려봅니다.

촛불 행진 가실 계획 있으신 분은 보시구요.. 12. 31 에 꼭 나오시기 바랍니다...


시작은 3시 부터였습니다.

제 경우에 좀 일찍 서둘러서 나오는 바람에 시청에 도착해 광장 시계를 보니 정확히 2시 30 분이더군요. 사람들이 광장의 반도 안 채우고 있기에 이거 10만은 커녕 1천도 못채우는게 아닌가 하고 걱정되기도 했구요.

다행히 3시 쯤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습니다.

깃발들도 많이 모여들었는데 그 중에 민주노동당 권영길 이라는 깃발이 압권이었습니다 -ㅅ-;

시작은 범대위 총장이시라는 한 신부님의 연설로 시작되었는데,

잡담으로 이주일과 붕어빵입니다. -_-;

범대위 총장 신부, xxx 인사드립니다!

하는데 사람들이 모두 이주일... 이러더군요.

여튼 그렇게 말 하셨고, 그 다음 뉴스에도 자주 나오던 미국 백악관 앞에서 투쟁하시던 흑색 두루마리 입으신 분.. 목사시라는군요, 이 분도 연설하셨습니다.

다음에 필리핀 교수라던가.. 그 분이 영어로 연설..오키나와에서 오신 여성협회 회장도 일어로 연설.. 했는데 전혀 못알아 듣기에 역시 통역으로 들었습니다. -_-;

4시 반 경에 이 연설들이 끝나고 이선희, 신해철, 안치환, 처음 촛불 시위 제안하신 분 들이 차례로 효순, 미선의 혼을 위로했습니다.

6시 경에 효순, 미선 아버지 2 분의 말씀이 있으시고...

범대위 간부 한 명의 민족선언문 낭독이 시작되었습니다.

일제히 촛불을 치켜들고 함성을 지르고, 파도타기를 하고...

뭐 뉴스로도 보셨겠지만 직접 보는 것과는 느낌이 전혀 다르답니다.;;

그리고 덕수궁 앞으로 나아가 광화문 사거리의 미 대사관으로 향하기 위해 수많은 촛불들이 일제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러나 저 앞에 3열로 늘어서서 굳게 몸으로 막고 있는 어리석은 전경들..;;

무대의 범대위 간부(덧붙여서 여러분들이 보신 그 무대는 대형 트럭에 설치된 것입니다.)들이 이 곳으로 가지 말고 시청으로 우회해서 흩어져서 다시 만나자더군요.

이 때부터 돌파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시청 뒤를 우회해도 경찰들이 역시 길을 막고,

몸으로 미니까.. 경찰들이 방패로 쳐내더군요. 기가 막혔습니다.

그러나 광화문 근처의 수많은 골목길마저 막을 수는 없었고...

수십 방향으로 밀쳐 나오는 촛불들을 막다 보니 경찰들의 수비 병력은 자연 허술하게 되고 큰 길이 결국 뚫려 결국 광화문 사거리로 일제히 달려갔습니다.

이것을 뉴스에서 1 차 돌파라고 하더군요..;;

말이 1차 돌파지 담도 넘고 쓰레기차 넘고 장난 아니었습니다. ;

광화문 사거리.. 이순식 장군 께서 서있는 곳 아시죠?

그 곳에서 전방 150m 앞 정도에 미 대사관이 있습니다.

하지만 장군의 바로 옆에 전경대기차 수십대를 세워 길을 막고 그 앞에 다시 전경들이 3열로 가로막더군요.

흔히 말하는 바리케이드.. 라는거죠.

7시 30 분 쯤 되자(시계가 없었으므로 감입니다.)

모든 촛불들이 일제히 집결했고 무대차량도 들어왔습니다.

헌데 사방으로 바리케이드를 뚫다 보니 사거리에 심어진 작은 나무들이 모두 짓밟혔습니다.

그러나 그게 어떻습니까, 효순 미선이의 꿈은 더 처참하게 짓뭉개졌으니..

앞에서는 젊은 청년들이 몸으로 밀고

전경차량 위로도 돌파를 시도했습니다.

전경차량이 워낙 많다보니 바리케이드로만 그대로 막은게 아니라 그 옆으로 세로로 길게 늘어섰습니다. 이 곳으로 돌파하려고 했죠.. 하지만 이 위에서도 전경들이 주둔했습니다.

그 사이 우리들은 평화시위 비폭력 과 불법주차 단속하라(-_-;) 를 외쳤고,

무대차량에서는 시민 한 사람씩 나와 연설을 했습니다.

그 때 저는 전경차량 위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하도 올라가 차가 거의 박살났습니다 --;) 수만 촛불들의 모습을 위에서 바라본 모습은 예술이더군요..

인터넷 보도 등에서 1만이라는데 확실히 1만은 넘습니다. 규모를 축소시키려는 매국적인 보도 갔군요. 훗...;;

여튼 9시 20분경 바리케이드 우측의 차량위의 길이 뚫리면서 300 여명이 이 곳으로 짓쳐들어갔습니다.

범대위에서 이제 그만 해체합시다.. 모두 잘싸웠습니다. 하던 순간에 말이죠 하필..;;

차량위로 달려가 잽싸게 뛰어내린다음 대사관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이것이 2차 돌파랍니다.

그곳에서 경찰 몇백명이 주둔해 있더군요. 바로 입구, 바로 성조기가 계양된 앞에서.;

아.. 수만의 촛불들은 그 때 해체된 듯 합니다.. 경찰이 300명이 돌파하자 바리케이드를 다시 견고히 쳤거든요..

저는 바리케이드를 돌파했구요.

대사관 바로 앞에 100 명이, 경찰들의 분열작전으로 대사관과 바리케이드 사이에 200 여명이 고립되었습니다. 즉, 우리들이 간 곳은 최전방. 문제는 이곳에 방송기자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참 나.... 기자들 잘만 따라오더니 정작 중요한 순간엔...

우리들은 대사관 앞에 앉아 아침이슬 아리랑 을 부르며 비폭력 을 외쳤습니다.

사방으로 우릴 포위한 전경들 몸으로 밀어대더군요. 몸으로 버텼습니다.

방패로 치더군요. 발로 버텼습니다.

방패로 머리와 다리를 찍더군요. 하하...;;

뉴스를 아무리 시청한 분도 이 사실은 모를겁니다. 경찰들이 먼지 ssibal, 개xx 를 연발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이 사실이 언론에서는 어떻게 보도되었는지 아십니까?

일부 시민들이 대사관으로 진입하다 폭력이...;

일부가 아니라 모두가 가고 싶었지만.. 전경들이 막은 겁니다.

촛불을 들고 비폭력을 외쳤지만 촛불은 땅에 뒹굴어 꺼지고 육신은 그들에게 걷어차였지요.

이 곳에 어제 경찰에게 폭행당한 우리 100명에 포함되는 분들 계실 겁니다. 여러분들도 이 사실을 널리 알리십시오.

카메라로 찍으니까 찍지마! 하며 얼굴을 가리다 내가 부끄럽냐 $!%!^! 라고 하니 손을 치우더군요. 훗 --;

우리 100명.. 날을 샐 수도 있었지만 결국 범대위에서 물러나라길래 그러기로 했습니다.

알아서 헤친다는데도 경찰들 계속 밀더군요. 어떤 여대생 분 울먹이면서 이 개만도 못한 xx 들아! 그러자 전경 투구를 벗으며 ssibal.. 하하..;

밀던 도중 전경 한 명이 지나치게 깊숙이 진입해서 패버렸습니다. 어떤 아저씨가 투구를 치길래 제가 목을 눌렀고 동시에 사람들이 밟았습니다.

정당방위랄까요,

여튼 아리랑 한 번 더 부르고 12. 31에 모이기로 한 뒤 헤어졌습니다.

이미 수만의 촛불은 해체되어 있더군요..

12. 31 이 날은 정말 역사에 대규모 민족운동으로 길이남을 것입니다..

모두 나서서 미군들을 몰아내고, 어리석은 정부의 개들, 의지가 없는 검은 벽, 전경들을 돌파하고 이번엔 정말 100명이 아닌 수만명의 시민이 대사관 앞에 집결해야 합니다.

수만의 촛불이 모이면 경찰도 폭력은 못 씁니다. 더군다나 기자도 있는데..

진실을 여러분들도 좀 아셔야겠고... 아울러 12. 31이 역사에 길이남을 수 있기를 빌며 그 모임에 모두의 참석을 부탁드립니다.







진실을 그대로 전하는 방송,신문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답변일 2002.12.16